
언젠가 정리해보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계속 미루고 있었던 그림과 AI에 대한 생각
그림이 업이 아닌 취미인 사람의 배부른 소리이므로 주의...
"나는 한 세대 뒤면 사람들의 현실 인식이 인공지능과 단단히 결합되어 있으리라고 예상한다. 한 세대 뒤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인공지능보다 2020년대의 대중이 인공지능에 보인 반응을 오히려 더 낯설게 여길 것이다. 2020년대에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토템 몇 가지는 그 때는 이미 무너져 있을지도 모른다. 개인의 창의성이라든가 고유성, 혹은 다른 개념들이 완전히 부서지거나, 기묘하게 왜곡되거나, 균열이 나 있을 것이다." - 「먼저 온 미래」, 장강명
몇 년 뒤면 그림을 '그린다'가 아니고 '생성한다'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러워질 수도 있을까? 생성형 AI로 그림을 생성하는 일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일보다 더 자연스럽고 보편화된다면 그 때에도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인지. 오리지널 창작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2차 창작을 취미로 하는 사람임에도 이런 고민을 끝없이 하게 된다. 처음은 midjourney로 생성한 이미지를 봤을 때, 그 뒤엔 LoRA 등으로 특정 일러스트레이터의 화풍을 생성할 수 있게 되었을 때, 많은 사람들이 챗GPT를 통해 사진을 스튜디오 지브리풍의 이미지로 변환했을 때, X(구 트위터)가 점점 Grok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기 시작하고 이제는 누구나 X(구 트위터)에 게재된 이미지를 AI로 수정할 수 있게 된 순간을 맞이했을 때... 점점 더 이런 순간을 자주 맞이하게 되는 것 같다.
저작권이라는 요소가 아직은 그나마 사람들이 (이마저도 내 작은 시각으로는 서브컬쳐를 향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인 것 같다.) 생성형 AI를 통한 그림 생성 행위에 있어서 거부감을 갖고 유지하게 해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.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스튜디오 지브리풍의 이미지를 생성해내는 걸 보며 그 거부감도 서서히 옅어질 거라고 느꼈다.
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. 어릴 때부터 그린 습관 같은 면도 있고, 어제보다 조금은 더 나아지는 걸 보는 것도 뿌듯하고, 친구들과 같이 동인 행사에 나가는 것도, 다른 사람이 내 그림을 봐주는 것도 즐겁다. 하지만 결국 그 중에 가장 핵이 되는 이유 하나만 남기라고 한다면 그냥 그리는 행위가 즐겁기 때문이다. 어렴풋이 생각했던 이미지가 구체화되었을 때의 순수한 기쁨이 있다고 해야하나, 그렇기 때문에 가끔 여러가지 좌절과 실망을 하더라도 지금까지 계속 그리고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.
만약에 저작권 문제가 하나도 없고, 누구나 생성형 AI를 통해 자신이 생각한대로 그림을 '생성'해낼 수 있다면? 그 때도 그림을 그리고 있을 수 있을 것인지? 그림을 '그린다'는 일이 미련하고 비효율적인 행위가 된다면? 그 때는 그림을 그리는 게 즐겁지 않게 될까? 하고 생각해 본다.
사실 이렇게 생각해도 나는 답을 못 찾겠어서 그냥 지금은 있는 힘껏 그려보려고 한다. 언젠가 이렇게 즐겁게 그리지 못 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오히려 일단은 지금이라도 즐겨야지 싶고. 그저 취미로 그리는 사람도 이렇게 심란한데 업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떨지...걱정이 크다.